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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서양화가·패션디자이너 “같은재료 다른감동”2020-01-20 20:35:30
작성자 Level 10


 

여기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서양화가이며 또다른 한 사람은 패션디자이너다. 두 사람은 실과 바늘, 천 등으로 각자의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것들은 그림이 되기도 했고 때론 옷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가던 두 사람의 예술세계가 어느 날 같은 지점에서 만났다. 9월1일까지 아트스페이스펄에서 열리는 기획전 ‘우연한 만남’은 이 우연한,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를 어떤 만남을 보여주는 전시다.

서옥순·김건이 ‘우연한 만남展’
실·바늘·천으로 각자 작품활동
徐, 여성성·한국적 미의식 천착
金, 색과 천 가진 질감관계 조율


‘눈물’과 ‘업사이클링’이라는 각각의 주제로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서옥순 작가와 김건이 패션디자이너의 작품은 작업 과정의 분명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시각적 결과물은 매우 유사하다. 반복해서 원을 한겹 한겹 쌓아간 작품들은 언뜻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색감과 질감으로 표현되는 시공간의 단면은 작업방식의 뚜렷한 차별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이 겹겹이 쌓아올린 것은 그저 단순한 선과 면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옥순 작가는 여성성에 대한 자의식과 한국적 미의식의 결합에 천착해 온 작가다. 캔버스에 바늘과 실로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기법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그의 작업실엔 물감과 붓, 캔버스 이외에도 실과 바늘, 각종 천과 재봉틀로 채워져 있다. 스스로를 ‘바늘과 실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라고 말하는 그의 작업은 어릴 적 할머니가 꿰매던 알록달록한 복주머니에서 시작된다. 그는 천에 바늘과 실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거나 여러 가지 색과 질감을 가진 천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회화적이면서 입체적인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그에게 바느질이란 자아를 찾아가는 작업이며, 세상의 상처를 꿰매고 치유하는 시도다. 길고 가는 천으로 겹겹이 쌓아 만들어진 둥근 원은 ‘눈’이다. 나무의 나이테와 같은 긴 시간의 축적을 거쳐 만들어진 그 ‘눈’이 보고 있는(또는 보여주는) 것은 ‘상처입은 또 다른 나’이다.

김건이 작가는 패션 디자이너다. 1999년 ‘앙디올’이라는 오트쿠튀르 브랜드를 론칭해 올해 20주년을 맞아 대구를 대표하는 패션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수십년 동안 옷을 만들고 남은 엄청난 양의 원단 조각들은 그에겐 훈장 같은 것이다. 남들 눈에는 쓰고 남은 조각천이며 버려지면 쓰레기일 뿐인 것이지만, 그에겐 누군가의 옷이며 그 옷을 입은 누군가의 삶이다. 함부로 그 조각들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그렇게 모아진 원단 조각이 작품으로 탄생한 것인 ‘업사이클링’이다.

촉각적인 질감으로 색과 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그의 작업은 수많은 조각을 결대로 자르고 이어붙여 하나의 띠로 만드는 것에서 출발한다. 마치 하나의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면이 되듯, 조각난 수많은 천들이 띠로 연결되고 둥글게 겹겹이 쌓이면서 선과 면을 만든다. 조각난 원단을 일일이 자르고 이어붙이고 쌓아가는 이 지난한 과정은 재료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이처럼 각각의 색과 천이 가진 질감의 관계를 조율하면서 작가는 그 속에 수많은 옷과 이야기와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 나간다.

김옥렬 아트스페이스펄 대표는 “서옥순 작가와 김건이 디자이너는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각자의 삶의 방식을 실천해 왔다. 이번 전시를 통해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은 부분에 대한 다양한 감상을 통해 유사성의 의미와 차이를 인식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